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리처드 3세 (문단 편집) ==== 부계 [[Y 염색체]] 비교 분석/[[영국 여왕]] 정통성 문제 ==== 리처드 3세가 후사 없이 죽고 그의 형제들도 후사를 남기지 못한 관계로, 가장 가까운 부계 후손을 찾아야 했다. 리처드 3세의 고조 할아버지 [[에드워드 3세]](Edward III)의 아들 곤트의 존(John of Gaunt)의 후손들의 유전자 정보가 필요했다. 연구에 제공된 유전자 정보는 존의 13대손 5대 보퍼트 공작 헨리 서머싯(Henry Somerset, 5th Duke of Beaufort 1744-1803)에게서 파생된 7대 후손 형제 2명, 5대 후손 남성 1명 그리고 4대 후손 형제 2명, 총 5명에게서 왔다. 검사 결과 형제 관계에 있는 유전자 정보 중 한 쌍은 아버지가 일치하지 않았고 거기에 나머지 4명의 후손도 리처드 3세의 부계 Y 유전자 정보와는 일치하지 않았다.[* 대중에 개인정보는 공개하지 않고 유전자 정보가 리처드 3세와 일치하는지 안 하는지만 공개했다.] 즉 현재 살아있는 서머싯 가문의 남성들은 [[에드워드 3세]]의 후손이 아니라고 판명난 것이다. 거기에 [[에드워드 3세]]의 6대조 할아버지 앙주 백작 조프루아 플랜태저넷(Geoffrey Plantagenet, Count of Anjou 1129-1151. [[풀크|풀크 5세]]의 장남이자 [[헨리 2세]]의 아버지) 쪽에서 내려간 부계 후손도 유전자 검사를 받았지만 마찬가지로 리처드 3세의 유전자와 일치하지 않았다. 영국 왕가의 복잡한 결혼 관계와 부계 후손의 유전자 불일치는 여러 가지 논쟁을 일으켰다. 먼저 [[플랜태저넷 왕조]]의 [[남자]] 혈통 문제가 제기되었고, 나아가 당시 영국 군주였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정통성 문제까지 야기되었다. 동양권에서 [[조선]] 왕조는 방계가 조선 후기에 왕으로 즉위했지만 입양하는 방식으로 왕통을 이어[* 조선에서는 선왕이 후사 없이 죽어 방계 왕족이 즉위하는 경우에는 기존 왕, 또는 새 국왕보다 한 항렬 높은 이전 왕의 양자로 입적시킴이 보편적이었다. 명종의 조카였던 선조는 즉위하면서 명종의 양자로 입적되었고, 철종은 한 항렬 높은 순조의 양자로, 고종은 역시 한 항렬 높은 효명세자(추존왕 익종, 뒷날의 추존황제 문조)의 양자로 입적되었다. 단, [[인조]]는 [[광해군]]을 쫓아내고 즉위한 탓에 이전 국왕의 양자로 입적되지 않고 왕위를 계승했다.] 왕조의 이름이 바뀌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현재 영국의 왕사는 [[노르만 왕조]]의 [[윌리엄 1세]](William I)를 시작으로 보지만, 왕조가 어느 정도 안정권에 들어가면 적통을 이어받을 왕자가 없었던 관계로 1-2백년 꼴로 왕조가 바뀌었다. 서양에서는 같은 가문의 [[시조]]를 중심으로 적통 혈통이 아닌 형제나 방계가 이어 받으면 왕조의 [[이름]]이 바뀌기도 했다. [[살리카법]]을 국법으로 사용하지 않는 경우에 한해서[* [[하노버 왕조]]는 이름에서 볼 수 있듯 원래 근대의 독일 통일 이전의 여러 소국의 한 왕가였고, [[영국 의회]]가 [[하노버 왕조]]의 [[조지 1세]]를 영국왕으로 옹립하면서 한동안 영국 왕위와 하노버 왕위의 동군연합이 있었다. 다만 하노버 쪽은 그놈의 살리카 법 때문에 [[빅토리아 여왕]]이 즉위하면서 동군연합이 깨져서 작은 삼촌에게 하노버 왕위가 넘어갔다.] 딸이나 외가 후손이 왕위를 계승함을 인정했기 때문에, 남편의 성을 따라가는 서양권 문화상 한 갈래에서 시작은 되었으나 여왕의 남편의 성에 따라 왕조 이름이 바뀌는 경우도 많았다. 지금 영국 왕실이 좋은 예.[* 다만 이것도 여왕에게서 왕위를 이어야 하는 찰스 왕세자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합쳐진 성이 아닌 '윈저'로 고정. 자세한 사연은 [[엘리자베스 2세]]를 참조.] 예를 들어 조선 왕조도 이성계를 조상으로 두고 후반으로 가면 갈수록 방계 왕가들이 왕위를 계승하여 왕조의 성씨인 이씨(李氏)는 안 바뀌었지만, 영국의 왕조들은 왕자의 씨가 말라(?) 버려 흡사 이성계 형제의 후손이나 혹은 딸의 후손을 중국땅에서 찾아와 조선의 국왕으로 옹립하는 꼴이 되었는데, 영국은 실제로 그렇게 했다. [[노르만 왕조]] 4대 [[스티븐 왕]]이 선왕의 [[조카]]로 왕가가 한 번 바뀌고 일명 '앙주 왕조'라 불리는 [[플랜태저넷 왕조]]가 들어서고 안정이 되나 싶었는데, 리처드 3세 때 [[플랜태저넷 왕조]]의 방계 [[튜더 왕조]]로 왕위가 넘어갔고 [[엘리자베스 1세|엘리자베스 여왕]]이 후사 없이 죽자 [[튜더 왕조]]는 끝이 났다. 영국 의회는 계속해서 리처드 3세의 누이의 후손들을 초청해 국왕으로 옹립했는데, 그래서 리처드 3세와 그의 형제 그리고 후손들을 [[플랜태저넷 왕조]]에서 따로 분리해 [[요크 왕조]]라고 부른다. 한동안 이 [[요크 왕조]] 계열 모계 후손[* 그냥 이 말만 보면 거리감이 좀 있겠지만, '''[[헨리 8세]]'''부터가 이에 해당되고, 튜더 왕조 이후에 스튜어트 왕조는 [[헨리 7세]]와 [[요크의 엘리자베스]]의 장녀인 [[마거릿 튜더]]의 [[제임스 1세|외증손자]]를 데려와 시작했다. 하노버 왕조 또한 제임스 1세의 후손이긴 하다. 즉, 하노버 왕조와 그 이후의 왕조들도 튜더 왕조의 혈통이 없지는 않다.]을 초빙해 영국왕으로 섬겼는데, 가장 마지막에 옹립한 왕조가 현 영국 왕실의 본류가 되는 [[하노버 왕조]]이다. [[하노버 왕조]]는 독일로 시집간 [[요크 왕조]] 공주의 후손이다 보니[* 물론 영국에서도 아무 방계나 모셔오진 않았다. 모계 쪽으로 왕위와 가장 가까운 왕족을 찾다보니 하노버 집안을 선택했다.] 원래 영국 왕위계승에선 거리가 있었다. 혹 데려온 하노버 왕조 후손들이 영국에서 후사를 낳지 못한다면, 영국은 다시 다른 나라에서 국왕으로 빌려와야 하는 상황이 생길 가능성이 있었다. 혹 하노버 왕조가 끝나서 영국 내 여러 다른 방계 왕족들이 서로 왕위계승권을 주장하는 심각한 내전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 이를 막기 위해 제정한 법률이 영국 왕위계승서열 법이다.[* 리처드 3세의 누이 '앤 공주'의 후손들에게 먼저 영국 국왕 승계권을 주게 되는 법. 혹 '앤 공주'의 후손이 끊어지면 앤의 혈통을 중심으로 가장 가까운 왕족이 영국 국왕의 자리를 승계한다.] 다행히 [[하노버 왕조]]가 안정화된 덕에 우려했던 왕위계승 내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윌리엄 왕자]]의 아내 [[캐서린 미들턴]] 왕자비가 첫째 아이를 임신하자 갑자기 영국의회에서 성별에 상관 없이 첫째가 무조건 왕위를 계승하는 조항을 넣었다.--그래서 첫째가 태어나기 전까지 여아를 임신한 게 아니냐는 소문이 돌았다-- 물론 결과는 [[조지 알렉산더 루이]]가 태어나서 법이 바뀐 것과는 상관없게 되었지만 어쨌든 이 영국왕실 계승법은 이 요상한 근래의 경우를 빼곤 제정 이후 한번도 바뀐 적이 없다.][* 물론 남성후사가 없어 [[빅토리아 여왕]] 승계, 그리고 [[엘리자베스 2세]]가 각각 왕위를 계승해서 왕가의 이름이 좀 바뀌긴 했지만 하노버 왕조로부터 내려오는 정통성은 유지되었다.] 현 영국 왕실은 [[요크 왕조]]의 후손이긴 하고 왕조의 직접적인 혈통은 [[하노버 왕조]]에서 왔지만, 법적인 정통성은 앞서 말한 왕위계승서열법에서 찾는다. 검사로 유전자가 일치하지 않은 것은 검사를 받은 보퍼트 공작의 후손 서머싯 가문의 후손들이었고, 이걸 이유로 검사도 받지 않은 나머지 보퍼트 공작 후손들이 [[요크 왕조]]의 후손이 아니라고 주장하기엔 무리가 있다. 거기에 추가 검사로 밝혀낸 건 '5대 보퍼트 공작 헨리 서머싯'의 4대 후손즈음에 일어난 일이란 것까지다. 덧붙여 리처드 3세의 하플로 그룹은 G-P287, 서머셋 남계 5명 중 4명은 모두 R1b-U152로 나왔는데 그나마도 1명은 다른 형태인 R계열이 아닌 I-M170으로 나와서 한 집안의 후손들 5명 안에서 자기들끼리도 불일치하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 [[파일:richardfamilytree.jpg|width=850]] || || 리처드 3세와 현대 서머싯 가문의 관계를 보여주는 족보 || 위의 결과를 토대로 '서머싯' 가문의 조상이며 [[튜더 왕조]]의 시조가 되는 '곤트의 존'과 그의 아버지 형제가 모두 [[플랜태저넷 왕조]]의 혈통이 아니라는 해괴한 논리가 도출되었다. 이에 따라 [[튜더 왕조]]의 정통성은 무너졌고 튜더 쪽과 혼인관계가 있었던 [[하노버 왕조]]의 정통성도 무너져서 당시 영국 군주였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왕위에 계속 있을 이유가 없다는 논리도 나왔다. 예를 들어 [[경주 김씨]]의 문파 중에 유명한 사람의 유골이 하나 발굴되었다고 치자. 유골의 주인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 알려진 남성 후손의 유전자 검사를 했는데 일치하지 않았다. 검사로 밝혀진 사실은 후손이라고 알려진 남성이 김해 김씨 문파의 혈통적 후손이 아니라는 것뿐이다. 생각해보자. 웃대 조상의 누군가가 바람을 피웠거나 족보를 샀다거나 하면, 자기가 생각하는 소속 가문과 실제 혈통이 달라질 수 있다. 그렇다고 이 남자의 집안, 경주 김씨 문파 전체의 혈통성을 부정할 수 있을까? 더 나아가 신라왕들의 정통성까지 부인할 수 있을까? 달 보라고 손가락을 가리키는데 손가락만 보고 달이 없다고 부정하는 꼴이다. 혹 부계 정통성이 깨지는 확실한 결과물이 나와도 바뀌는 건 없다. 영국 의회가 새 임금으로 옹립할 인물을 모셔올 때 아무나 데려오지 않았다. [[하노버 왕조]]의 경우 이미 독일 소국의 왕으로 [[요크 왕조]]의 모계 혈통이 흐른다고 봐서 모셔 왔다. 즉 [[요크 왕조]] 쪽 혈통이 부정되어도 이미 [[하노버 왕조]]의 왕가 혈통이다. 결정적으로 [[영국 국왕]]의 정통성은 앞에서 지적한 '영국 국왕 승계법(Act of Settlement 1701)'에서 나오고 그 다음이 혈통의 정통성으로 [[요크 왕조]] 모계에서 나온 [[하노버 왕조]]인 것이다. 장황하게 의미 부여할 일도 아닌 것이 계보만 훑어도 답이 나온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정통성은 리처드 3세가 아니라 에드워드 3세 - 곤트의 존 - 증손녀 마거릿 보퍼트 - 헨리 7세 - 딸 마거릿- 제임스 5세 - 메리 스튜어트 - 제임스 1세 - 딸 엘리자베스 - 딸 소피아 - 조지 1세 - 조지 2세 - 프레데릭 - 조지 3세 - 켄트 공작 - 빅토리아 여왕 - 에드워드 7세 - 조지 5세 - 조지 6세 - 엘리자베스 2세 순으로 이어졌다. 마거릿 보퍼트를 빼면 형들이 많거나 딸이라 계승 순위만 멀 뿐 모두 왕의 자식이나 손자이고, 법적인 문제니 왕위계승법까지 갈 것도 없이 리처드 3세나 서머셋 후손, 조프루아 백작의 서자손 중 누구 혈통이 바뀌었든 현 엘리자베스 여왕의 정통성 문제와는 무관하지 않을까. 다만 저 계보 중, 혹은 에드워드 3세 조상 중에 다른 혈통이 끼어들었다고 밝혀지면 좀 문제가 되겠지만. [[https://www.youtube.com/watch?v=liTMrzRJKoo&ab_channel=TheAnneBoleynFilesandTudorSociety|#튜더 협회[* 위의 리카디언들과 비슷한 협회로 이쪽은 튜더 왕조와 앤 볼린에 꽂힌 사람들.]의 유전자 분석정보 해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